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쇠렌 키에르케고르 (Søren Kierkegaard)

덴마크 철학자

2025년 4월 13일

주말에도 회사 생각뿐이라면, 키에르케고르가 알려주는 '불안의 진짜 의미'

당신이 느끼는 이 불안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, 진짜 나를 향한 내면의 신호입니다.

"주말이 돼도 회사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. 한숨만 나고, 밥도 잘 안 넘어가고, 옆에 있는 여자친구에게까지 미안해져요."

이런 감정들,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?
아니, 정말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?

이 상황을 들은 키에르케고르라면,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.

“그래, 그 불안은 ‘네가 진짜 나로 살고 있지 않다’는 신호야.”


🔍 불안은 도망쳐야 할 감정이 아니라,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

키에르케고르는 **불안(Angst)**을 병적인 증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. 오히려 그는 불안을 인간이 진짜 ‘자기 자신’에 가까워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감정이라고 말했어요.

“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.”
— 《불안의 개념》

그의 말처럼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이 모호하고 답답한 감정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있어요. 그것은 바로 당신이 '나, 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일 수 있다는 거죠.


😰 "왜 이렇게 힘들지?"

그건 ‘너 자신이 아니기 때문’이에요

회사에서 일하고, 사람들과 관계 맺고, 눈치 보고, 버텨내는 삶.
겉으로 보면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지만, 속으로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… 그건 자기 자신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.

키에르케고르는 이 상태를 **절망(despair)**이라고 불렀어요.

"절망이란, 자기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."

당신은 회사라는 틀 속에서 ‘괜찮은 직장인’, ‘눈치 빠른 사회인’의 역할을 하느라, 진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지는 않나요?

이렇게 ‘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삶’은 결국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존재, 즉 절망 속의 인간으로 만들어버려요.


💡 "내가 너무 약한 건 아닐까?"

이 말은 많은 직장인들이 자기 입으로, 또는 속으로 되뇌는 문장이죠.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말합니다:

“진정한 용기는 불안을 부정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, 그것을 직면하고 견디는 데 있다.”

즉, 불안을 느낀다는 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, 오히려 깨어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는 겁니다. "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?",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큰 성찰이에요.


🧭 정신과 상담, 괜찮을까요?

당연히 괜찮습니다.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은 ‘혼자 감당하라’가 아니에요. 그는 인간이 고독하게 내면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보았지만, 그 고독 속에서 우리는 도움의 손길을 선택할 자유도 함께 가진다고 보았어요.

👉 그러니까,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건 ‘약한 사람의 선택’이 아니라,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의 선택입니다.


💬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?

지금 당신은 여자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죠. 관계에 영향을 주는 불안한 감정들.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.

“진짜 사랑은 완전한 나로 서는 데서 출발한다.”

당신이 **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건 어렵습니다.
지금 해야 할 일은 여자친구에게 잘하려 애쓰기보다,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정직해지는 일이에요.


🎯 결론: 이 불안은 ‘나’를 부르고 있다

당신은 지금 직장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역할은 수행하고 있지만, 삶의 주체로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어요.

키에르케고르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말했어요.

“자기 자신이 되기를 선택하라. 그 외의 모든 것은 절망이다.”

지금의 이 불안은,
✔️ 나로 살아갈 용기를 내보라는 깊은 내면의 울림입니다.
✔️ 그 울림을 무시하지 마세요.

당신은 이미 질문을 던졌고,
이제는 천천히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용기를 낼 차례입니다.

👉 지금 느끼는 불안, 그 자체가 '변화의 시작'입니다.